콘텐츠로 건너뛰기

신구약 중간사 6편, 하스몬 왕조의 흥망과 로마 지배의 서막

신구약 중간사 6편, 하스몬 왕조의 흥망과 로마 지배의 서막

하스몬 왕조


1. 독립 왕국의 탄생 (기원전 164~142년)

마카비 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한 후, 유다 민족은 점차 독립을 향한 길을 걷게 됩니다. 초기에는 셀류시드 왕조의 압력과 간섭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안티오코스 4세의 죽음과 셀류시드 제국의 내분은 유대인들에게 기회가 되었어요.

  • 유다 마카비는 성전을 되찾은 뒤에도 계속 전투를 이어갔지만, 기원전 160년경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 그의 동생 요나단이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고, 정치적으로도 영리하게 움직였어요. 셀류시드 왕위 계승 분쟁에 개입하며 대제사장직을 얻었고, 유다 민족은 점차 자치권을 확립하게 됩니다.
  • 또 다른 동생 시몬은 결정적인 순간에 독립을 이끌어 냅니다. 기원전 142년, 셀류시드 왕국이 내전에 휘말리자 유대인의 정치적 자치를 승인했고, 세금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이때를 유대 역사에서 하스몬 왕조의 공식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시몬은 대제사장, 군사 지도자, 정치적 통치자라는 세 가지 권한을 모두 가지며 사실상 독립된 국가를 다스리게 되었어요.



2. 대제사장과 왕권의 결합 (기원전 134~104년)

시몬이 암살된 후 그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 1세가 권력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강력한 통치자로, 영토 확장과 종교 통합 정책을 추진했어요.

  • 영토 확장: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이두메아(에돔 지역)를 강제로 할례시켜 유대 공동체에 편입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보여주지만, 억압적이었기 때문에 이후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 대제사장과 정치 지도자의 통합: 그는 대제사장이면서 동시에 군사·정치 권력을 쥐었습니다. 이때부터 대제사장직이 곧 국가 권력의 핵심이 되었고, 유대 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신정 왕국으로 발전했어요.

히르카누스의 후계자인 아리스토불루스 1세(기원전 104~103년)는 스스로 왕의 칭호를 사용하며 유다 역사상 최초로 대제사장이자 왕이 됩니다. 이로써 제사장 왕국, 즉 하스몬 왕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요.



3. 번영과 내부 분열 (기원전 103~76년)

아리스토불루스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알렉산드로스 얀나이(기원전 103~76년)는 하스몬 왕조를 가장 넓은 영토로 확장시킨 통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동시에 가장 심각한 분열을 낳았습니다.

  • 그는 군사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내부 정치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전통을 강조했지만, 사두개인들은 성전 중심의 제사 제도와 현실 정치에 더 가까웠습니다. 얀나이는 사두개인들과 손잡았고, 이에 반발한 바리새인들과는 내전까지 벌어졌습니다.
  • 내전 중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는데, 이는 유대 사회 내부의 균열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얀나이 사후, 그의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라(기원전 76~67년)가 통치하면서 잠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바리새인들을 중용하며 균형을 맞추려 했고, 유대 사회는 짧은 안정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4. 권력 다툼과 로마의 개입 (기원전 67~63년)

로마의 개입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죽은 뒤, 두 아들이 왕위를 두고 다툼을 벌였습니다.

  • 히르카누스 2세: 바리새파와 연합
  • 아리스토불루스 2세: 사두개파와 연합

이 권력 다툼은 단순한 가문 싸움이 아니라, 이미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대립을 국가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었어요. 결국 양측은 외세의 힘을 빌리게 되는데, 바로 로마였습니다.

기원전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진군합니다. 그는 두 형제의 다툼에 개입하며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결국 성전에 들어가 지성소까지 들여다보는 모욕적인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이로써 유다는 사실상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5. 하스몬 왕조의 의미와 한계

하스몬 왕조는 유대 민족이 스스로 독립을 이루고 왕조를 세운 귀한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회복했고, 헬라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가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분명했어요.

  • 긍정적 의미
    • 오랜만에 유대 독립 왕국을 세웠다.
    • 성전과 율법 중심의 신앙을 회복했다.
    • 수전절과 같은 종교적 전통이 확립되었다.
  • 한계와 문제점
    • 대제사장직이 정치 권력화되면서 종교적 순수성이 약화되었다.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나아가 에세네파와 같은 종파 분열이 심화되었다.
    • 내부 권력 다툼이 외세 개입을 불러, 결국 로마의 지배를 자초했다.



정리

  • 기원전 164년: 성전 정결 → 독립의 불씨
  • 기원전 142년: 시몬, 유다 독립 승인 → 하스몬 왕조 시작
  • 기원전 134~104년: 요한 히르카누스 1세, 영토 확장과 강제 개종 정책
  • 기원전 103~76년: 알렉산드로스 얀나이, 최대 번영과 심각한 내분
  • 기원전 76~67년: 살로메 알렉산드라, 잠시 평화와 안정
  • 기원전 67~63년: 형제 간 내전 → 로마 폼페이우스 개입 → 유다 속국화

하스몬 왕조는 민족 독립의 자부심이자 동시에 내부 분열과 부패가 불러온 몰락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신약 시대 유대 사회는 종파적 갈등이 고착되었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이전 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