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 배경과 서론
이 내용은 이지웅 목사님의 “빌립보서 1” 설교 말씀을 정리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맨 하단에 있습니다.

복음주의 안에서의 성경 공부, 안전한 접근법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안에는 비교적 안전하고 건강한 접근법들이 존재합니다. 오늘은 그중 한 가지 방법을 예시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한번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세요. 오늘은 2023년이 아닙니다. 4125년 9월 18일, 그리고 우리는 지금 ‘17지역’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한국어를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0년 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 편의 편지가 발견됩니다. 그 편지는 아주 오래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한글로 기록된 편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편지를 연구하려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언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2000년 전의 언어, 즉 한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전을 뒤져보지만, 어떤 단어들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편지에 “사랑하는 OO교회 성도 여러분”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에는 ‘~’ 물결 표시가 있다고 해봅시다. 2000년 뒤의 사람들은 “이 물결 표시가 무슨 뜻이지?” 하고 연구하겠죠. 그러나 현대의 우리에게는 별 의미 없는 단순한 문장 부호입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일상적인 표현이었지만, 후대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이런 표현을 연구하다가 ‘신비한 의미가 있다’, ‘계시가 담겨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단순한 습관적 표현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연구할 때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으로 기록되었고, 그 시대의 문화와 상황, 언어의 뉘앙스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어 하나만 떼어내 사전에서 뜻을 찾고 ‘이건 이런 의미다’라고 단정짓는다면, 본래의 의도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을 알고 싶어 하다가 이단적 해석에 빠지기도 합니다.
안전한 성경 해석의 네 가지 배경
성경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해석하려면, 그 말씀을 처음 기록했던 당시의 네 가지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 역사적 배경 –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문화적 배경 – 당시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어떠했는가
- 종교적 배경 – 신앙과 종교적 관습은 어떤 것이었는가
- 언어적 배경 – 단어와 표현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가
이 네 가지를 이해하면, 왜 그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왜 그 문장이 기록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반대로 이것을 무시하면 본문을 왜곡하게 되고, 결국 위험한 해석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의 연구 시작
이제 우리는 3일 동안 빌립보서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그때 사용할 방법은 바로 앞서 말한 역사적·문화적 배경 중심의 연구 방법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을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상황 ― 감옥 속에서
성경 본문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매여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빌립보서 1:13)
여기서 ‘매임’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감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감옥이 아닙니다. ‘시위대’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시위대는 로마 황제나 총독, 장군 등을 호위하던 특별한 군대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로마 황제의 근위병이 지키는 특별한 장소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감옥과는 다른 ‘자유로운 감옥’
그렇다면 바울이 있던 감옥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 편지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빌립보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감독, 집사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보통의 감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바울은 편지를 보내고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바울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겠다”(2:19) 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낸다”(2:25)고 말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이 사람을 마음대로 보낼 수 있다니, 이는 가택 연금 혹은 비교적 자유로운 구금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 외부와의 교류가 있었다.
빌립보 교회가 보낸 헌금을 바울은 직접 받았다고 기록합니다(4:18).
즉, 교인들이 직접 오고 갈 수 있었던 환경입니다. - 풀려날 희망을 품고 있었다.
바울은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를 위하여”(1:25),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확신하노라”(2:24)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곧 석방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바울의 감옥, 그리고 신앙의 태도
이 감옥은 쇠창살과 족쇄, 어둠과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서신을 쓰고 제자들을 보내며, 교회와 교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도 복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옥의 현실보다,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네 번 투옥과 빌립보서의 배경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감옥에 갇힌 사건이 네 번 등장해요. 이 네 장면을 빌립보서의 단서들과 견주어 보면, 바울이 어느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썼는지 자연스럽게 좁혀갈 수 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빌립보서는 로마의 가택 연금 상태에서 기록되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도달하는지 차근히 보겠습니다.
1) 빌립보 감옥과의 비교: “전형적인 감옥, 그러나 하룻밤”
2차 전도여행(AD 50–51) 중 빌립보에서 바울은 옷이 벗겨지고 매를 맞은 뒤 전형적인 감옥에 수감돼요. 쇠창살, 어둠, 족쇄… 우리가 떠올리는 바로 그곳이죠. 그러나 체류 시간은 하룻밤도 채 안 됨이 분명해요. 찬양 가운데 옥문이 열렸고 곧 풀려났기 때문이에요. 빌립보서 속 바울의 상황(편지 왕래가 자유롭고 동역자들이 드나들며, 석방에 대한 기대가 언급됨)과는 성격이 전혀 달라요. 즉, 후보에서 제외됩니다.
2) 예루살렘 감옥: “단기간 수감, 자유도 낮음”
3차 전도여행 이후 예루살렘(AD 57)에서 바울은 성전 모독이라는 누명으로 체포돼요. 이 구금은 2–3일 남짓으로 짧고, 자유로운 왕래나 서신의 원활한 주고받음이 부각되지 않아요. 빌립보서의 풍경과는 거리가 있어요. 이 역시 제외됩니다.
3) 가이사랴 감옥: “출입 허용과 보호—그러나 ‘로마행’ 확정”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이송된 바울은 AD 57–59, 약 2년 머뭅니다. 이때는 “자유를 주고 친구들이 돌보게 하라”는 명령이 있을 정도로 비교적 출입과 보살핌이 허용돼요. 이 점은 빌립보서의 단서들과 흡사해 보이지요.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어요.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했고, 당시 재판 국면에서 바울은 석방이 아니라 로마로 이동할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어요. 반면 빌립보서의 바울은 “곧 갈 것을 확신한다”, “살 것”이라고 말하며 석방 기대를 밝히죠. 그래서 가이사랴설은 유사하지만 비켜갑니다.
4) 로마의 가택 연금: “시위대, 왕래, 가르침, 석방 기대”
마지막으로 로마(AD 60–62). 바울은 한 군인의 감시 하에 ‘셋집’에서 지냅니다. 사람들을 날짜를 정해 집으로 초청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고,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해요. 곧 가택 연금 상태였죠. 형태상 감옥이지만 서신 발송·수신, 동역자 파송, 외부 방문이 자연스럽고, 로마 시위대(근위)의 언급, 그리고 무엇보다 석방에 대한 확신이 빌립보서와 정확히 포개집니다. 따라서 빌립보서는 로마 가택 연금기(AD 60–62)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게 가장 설득력 있어요.
바울의 사역 연표 한눈 정리
바울은 AD 32경 다메섹 길에서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뒤, 약 14년을 지나 AD 46경 본격 사역을 시작해요. 그리고 AD 57까지 11년 동안 1·2·3차 전도여행으로 아시아·마케도니아·아가야 등 동지중해 전역을 돌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이 여정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어요. 고린도후서 11장이 말하듯 39대 매 5회, 태장 3회, 투석 1회를 포함해 아홉 번의 중상을 겪고, 선박 파손 3회, 강도·바다·동족·이방의 위험, 결핍과 추위가 일상이었어요. 회복될 만하면 또 맞고,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하는 지독한 인내의 시간이었죠.
이후 예루살렘에서 거짓고소로 체포되어 예루살렘–가이사랴 2년–로마 2년으로 이어지는 총 4년 투옥의 수레바퀴가 굴러갑니다. 게다가 로마의 구금 제도상 국가가 음식을 보장하지 않아 바깥의 도움 없이는 굶주릴 수 있는 조건이었고, 셋집의 비용도 바울이 부담해야 했어요. 과거 천막 제작으로 자비량했던 바울에게 수입이 막힌 이 상황은 현실적으로 벼랑이었죠. 거기에 “예루살렘 헌금”을 둘러싼 수치스러운 소문까지 떠돌았어요.
역설: 감옥 안에서 “기뻐하라”
이 모든 맥락 위에서 읽는 빌립보서가 다르게 들리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의 기쁨은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고, 갇힘 자체가 복음의 진전을 낳았기 때문이에요. 그가 멈추자 성도들이 일어나 담대히 전하고, 심지어 불순한 동기로 전하는 이들까지 등장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만 전파되면 나는 기뻐한다”고 말해요. 시기와 비교를 불태우는 마음이 아니라, 복음의 전파 자체를 향한 순전한 기쁨이었어요. 심지어 시위대—황제를 호위하는 근위—에게까지 그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것을 기뻐합니다. 바울은 갇힘을 통해 평소 꿈꾸던 현장 접근(로마 엘리트 군인·관료권)을 얻게 되었음을 본 것이죠.
다윗과 바울: ‘하나님 마음에 합한’ 같은 결
설교는 여기서 다윗을 소환해요. 하나님이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합한 자”(행 13:22)라 하셨을 때는 골리앗을 이긴 영웅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양을 치던 한낱 목동의 자리였어요(시 78:70–72). 사람들 앞의 모습과 골방의 모습이 같은 정직함(토므, תֹּם), 남의 양을 내 양처럼 돌보는 성실함—이 일치(一致)의 인격을 하나님이 보셨어요. 바울에게서도 같은 결을 읽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 자신이 아니라 복음이 드러나는가에 초점을 맞춘 마음, 그게 순전한 기쁨의 근원이었어요.
동일함, 깨끗한 양심, 그리고 요청
여기서 우리의 몫은 기술이나 경력, 재정보다 먼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같은 사람이 되는 연습이에요. 공적 자리와 사적 자리가 겹쳐질 때 드러나는 양심의 투명도—그 일치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탕이죠. 그래서 기도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어요.
“주님, 깨끗한 양심을 주시고, 사람들 앞의 나와, 골방의 나가 하나 되게 하소서.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소중히 돌보게 하소서. 내 이름이 아니라 복음이 드러나는 기쁨을 배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