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1편-하나님의 침묵기? 신약을 열기 위한 400년의 이야기
신구약 중간(사이)의 기간이 약 400년이 된다고 해요. 그 사이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부터 신구약 중간 400년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기가 아닌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껴보시기를 바래요. 이 400년의 이야기는 신학적으로가 아닌 “역사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 첫번째 서론 이야기 함께 확인해보시겠어요?!

신구약 중간사 400년의 의미
신구약 중간사(Intertestamental Period)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가 닫히고, 신약의 첫 장면이 열릴 때까지 약 400년 동안의 역사·문화·정치의 변화사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성경 본문에는 이 시기의 연대기적 기록이 거의 없지만, 신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다리 같은 구간이에요. 이 글에서는 “성경에 없는 400년”이 왜 중요한지, 왜 ‘하나님의 침묵기’라고 불렸는지, 그리고 그 시기가 남긴 핵심 유산(헬라어, 회당, 종파 등)을 처음 읽는 분도 무리 없이 따라올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드릴게요.
신구약 중간(사이) ‘약 400년’은 무엇을 가리키나요?
보통 학계와 교회 전통에서는 에스라–느헤미야–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의 등장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작 사이를 중간사라고 부르곤 해요. 대략 기원전 5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1세기 무렵까지를 아우르며, 페르시아–헬레니즘–하스몬–로마로 이어지는 격동의 정치 변동이 유대 사회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표면적으로는 성경의 장(章)과 장 사이가 조용해 보이지만, 언어가 바뀌고, 제도와 문화가 바뀌고, 신앙 실천의 환경이 바뀐 시기였다고 보는 편이 정확해요.
이 400년 동안 일어난 가장 큰 변화의 줄기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아요.
▪️제국의 교체: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에서 헬라 제국의 문화 확산으로, 다시 독립과 내분을 거쳐 로마의 질서로 편입돼요.
▪️언어의 전환: 히브리어 중심에서 아람어와 코이네 헬라어가 실질적인 일상·학문·상업 언어로 자리 잡아요.
▪️종교 실천의 변용: 성전 중심의 예배만으로는 흩어진 공동체를 붙들기 어려워져 회당(시나고그)이 생겨나고, 율법 연구·낭독·기도가 지역 단위에서 일상화돼요.
▪️사상과 집단의 분화: 율법 해석과 정치 현실 대응 방식의 차이로 바리새인·사두개인·에세네파·열심당 같은 종파가 등장해요.
이 네 갈래가 얽히며, 신약의 무대—헬라어로 기록된 복음서, 회당에서 시작되는 선교,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논쟁, 로마 총독 아래의 재판—가 낯설지 않게 열려요.
왜 ‘하나님의 침묵기’라고 불렸을까요?
‘침묵기’라는 표현은 정경(正經)에 포함되는 선지자적 계시—예를 들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로 시작하는, 권위 있는 예언의 공적 선포—가 멈춘 상태를 가리켜요. 말라기 이후로 그와 같은 정경적 예언이 더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전통은 이 시대를 ‘하나님이 침묵하신 때’로 호칭했어요.
하지만 이 말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문헌 활동은 활발했어요. 유대 공동체는 역사서와 지혜문학, 이야기문학을 다수 남겼고, 이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 외경(가톨릭·정교회 전통의 제2경전) 혹은 위경(유대교·개신교 전통에서 비정경)으로 분류돼요.
▪️공동체의 신앙은 깊어졌어요. 성전이 더 이상 유일한 신앙의 중심이 될 수 없자, 율법 연구와 기도, 금식, 자선 같은 생활 경건이 확대됐어요.
▪️종파와 사상 논쟁이 활발했어요. ‘율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방 권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종파 분화를 촉발했어요.
즉, ‘침묵’은 정경적 예언의 중단을 뜻할 뿐,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진행이 멈췄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조용한 물밑 작업처럼, 신약의 장을 열 준비가 이 시기 내내 이루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가까워요.
400년 동안의 큰 흐름 한눈에 보기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페르시아의 관용 → 알렉산더의 정복과 헬레니즘 →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류시드의 각축 →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와 마카비 봉기 → 하스몬 독립과 내분 → 로마의 개입과 헤롯 체제.
이 과정에서 유대인은 정치적 독립과 신앙 정체성을 되찾으려 애쓰는 한편, 현실 정치와 타협하거나, 반대로 은둔과 순결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갈라지기도 해요. 이 균열과 긴장이 그대로 신약의 배경으로 이어지지요.
헬라어(코이네)의 확산이 신약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알렉산더 대왕 이후 코이네 헬라어는 동지중해와 서아시아 전역의 공용어로 널리 쓰였어요. 상업, 행정, 학문, 대중 소통의 표준이 하나로 맞춰졌다는 뜻이에요. 이 변화는 신약을 두 갈래로 바꿔 놓아요.
첫째, 신약 성경 자체가 헬라어로 기록돼요. 복음서와 서신이 헬라어 문체와 개념을 활용하면서도 히브리적 신앙 내용을 담아냈기에, 히브리적 사상과 헬라적 표현이 독특하게 결합돼요. 예를 들어 ‘에클레시아(교회)’, ‘에우앙겔리온(복음)’ 같은 단어는 당시 사회의 언어를 빌려 복음을 설명하는 창구가 돼요.
둘째, 선교의 속도가 빨라져요. 하나의 표준어가 있었다는 건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이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 언어 장벽이 낮았다는 뜻이에요. 헬라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에게 동시에 닿을 수 있는 공통 플랫폼이 되었고, 복음이 단기간에 널리 전파되는 결정적 조건을 마련했어요.
덧붙이면, 이 시기에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70인역, LXX)’이 등장해요.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70인역 어휘와 문장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 신약의 구약 인용을 이해하려면 70인역의 흔적을 알아두는 편이 좋아요.
회당(시나고그)의 등장은 왜 중요할까요?
바벨론 포로기와 그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거나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성전 예배만으로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힘들었어요. 흩어진 유대인들은 각 지역에 회당(시나고그)을 세우고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하며, 기도하고 토론했어요. 이 제도는 중간사 동안 정착·확대되며 세 가지 중요한 유산을 남겨요.
1. 말씀 중심의 신앙 실천이에요. 제사가 불가능해도 토라 낭독·강해·기도로 신앙을 이어갈 수 있었고, 경건이 일상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왔어요.
2.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이에요. 교육, 구제, 의사결정 등 사회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면서, 도시 곳곳의 유대 공동체를 단단히 묶어 주었어요.
3. 복음 선교의 첫 관문이에요.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새 도시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회당을 찾는 장면이 반복돼요. 회당은 성경을 아는 청중이 모인 곳이었고, 유대인과 경건한 이방인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었어요.
결과적으로 회당의 등장은 성전 중심 예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약의 현장감—도시마다 펼쳐지는 말씀 선포, 토론, 개종—을 이해하는 열쇠가 돼요.
종파의 형성: 왜 한 믿음이 여러 얼굴이 되었나요?
중간사의 핵심 현상 중 하나가 신앙과 현실 정치 사이의 긴장이에요. 율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경건의 방식), 이방 권력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정치적 태도)에 대한 답이 달라지면서 서로 다른 길이 생깁니다.
▪️바리새인은 율법과 전승(구전 율법)을 세밀하게 지키며, 일상 경건과 민중 교육을 중시했어요. 회당 기반의 영향력이 컸고, 랍비 전통으로 이어져요.
▪️사두개인은 성전·제사·제사장 귀족층을 중심으로 현실 정치에 비교적 협조적이었고, 성전 질서 유지를 최우선으로 봤어요.
▪️에세네파는 세속과 타락으로부터의 분리를 강조하며, 사해 주변 공동체처럼 규율과 정결을 중시하는 은둔적 경향을 보였어요.
▪️열심당(젤롯)은 정치·무력 투쟁을 통해 이방 지배를 끊으려는 강경 노선을 상징해요.
이 종파들은 각각 율법 해석, 부활·천사·운명에 대한 견해, 성전·세속 권력에 대한 태도가 달랐고, 신약의 논쟁과 갈등의 배경이 돼요.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논쟁, 사두개인의 함정 질문, 빌라도 법정, 심지어 십자가형이라는 로마식 처벌까지—모두 중간사가 잉태한 장면들이에요.
그 밖의 중요한 유산: 산헤드린, 서기관, 번역과 전승
중간사를 지나며 산헤드린(최고 의회) 같은 유대 자치 사법기구가 자리 잡고, 서기관(율법 학자) 집단이 성장해요. 그들은 문자 기록과 전승을 체계화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냈고, 지역별 아람어 번역(탈굼)과 해석 전통도 발전했어요.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율법 교사”와 논쟁하거나, 공회(산헤드린)의 심문을 받는 배경과 맞닿아요.
또한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 공동체가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로마 등 제국의 핵심 도시마다 형성되면서, 유대 신앙이 도시 네트워크 속에 엮여 들어가요. 이 네트워크는 신약 시대의 복음 확산 경로와 겹치며, 바울 서신이 도시연합처럼 묶여 읽히는 이유가 되지요.
‘외경’과 ‘위경’은 왜 중요한가요?
교파에 따라 분류와 위상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이 문헌들이 중간사의 공기와 문제의식—지배와 정체성, 경건과 지혜, 박해와 소망—을 담고 있다는 점이에요.
▪️외경(제2경전)은 가톨릭·정교회 전통에서 성경으로 읽히며, 유대·개신교 전통에서는 권위를 달리 보지만 역사·신앙 배경 자료로 중요하게 다뤄요.
▪️위경(유대·개신교 전통의 비정경)은 다양한 저작이 섞여 있으나, 당대의 사상·신앙·문학 양식을 보여주는 창문 역할을 해요.
이 문헌들은 정경과는 다른 위치지만, 당대 신앙인의 질문과 답, 갈등의 언어를 생생하게 전해줘서 신약의 어휘와 기대(특히 메시아·부활·지혜 전통)를 맥락 속에 놓아 줘요.
왜 이 시기를 알아야 신약이 풀리나요?
신약의 첫 장면부터 중간사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나요.
▪️언어: 헬라어가 공통어였기에 복음과 서신이 빠르고 넓게 퍼질 수 있었어요.
▪️제도: 회당이 도시마다 있었기에 말씀 선포의 무대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어요.
▪️집단: 종파들의 논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대조·충돌·해석의 자리를 제공했어요.
▪️정치: 로마의 법과 도로망, 행정 구조는 선교와 박해를 동시에 가능케 한 양날의 검이었어요.
결국 중간사는 “갈릴리의 한 선지자가 어떻게 단기간에 제국을 뒤흔드는 소식을 전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역사적 답을 쥐고 있어요. 언어·제도·네트워크·사상—모든 준비가 이 400년 동안 축적되었기 때문이에요.
신구약 중간사는 ‘기록의 공백’이 아니라, 신약의 언어·제도·사상·네트워크를 준비한 400년의 축적이에요. 이 다리를 건너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장면들이 훨씬 또렷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