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2편, 페르시아 제국 지배 (기원전 539~331년)

바벨론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
기원전 539년, 고대 근동의 강대국 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에게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복 전쟁이 아니라, 유대 민족에게는 운명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어요. 바벨론에 의해 끌려와 긴 포로 생활을 하던 유다인들에게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고레스 칙령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철저히 중앙집권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였지만, 페르시아는 조금 달랐습니다. 광대한 영토를 다스려야 했던 고레스는 피정복 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관용 정책을 펼쳤어요. 고레스는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고, 심지어 성전의 기물까지 되돌려주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는 성경 속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사건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강력한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고레스 칙령과 포로 귀환
고레스의 명령에 따라 첫 번째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수많은 유다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버려져 있던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농사와 생계도 불안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환 공동체의 최우선 과제는 성전 재건이었어요.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를 경험하는 장소였기 때문에, 성전을 세우는 일은 곧 신앙의 회복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 주변 민족들의 반대, 그리고 공동체 내부의 피로와 좌절로 인해 공사는 자주 중단되곤 했습니다.
이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일어나 백성들을 격려하며 성전 건축을 독려했습니다. 결국 기원전 516년, 포로에서 귀환한 지 약 20년 만에 제2성전, 흔히 ‘스룹바벨 성전’이라 불리는 건물이 완공되었어요. 이 성전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화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표징이었기에 공동체에게는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율법 공동체의 강화, 에스라와 느헤미야
성전이 세워진 후에도 공동체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주변 민족과의 갈등, 내부의 신앙적 해이, 사회적 불평등 등이 문제였어요.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였습니다.
에스라는 율법학자로서, 단순히 성전을 세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율법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세우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백성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유대인의 정체성임을 강조했어요. 이는 “율법 공동체”라는 새로운 유대 신앙의 형태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행정가이자 정치 지도자로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성벽은 단순히 군사적 방어 시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구별된 공동체”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성벽이 완성되자 공동체는 한층 더 안정되었고, 신앙과 민족 정체성도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어요.
아람어의 확산과 신앙 문화의 변화
페르시아 제국은 영토가 워낙 넓었기 때문에 소통을 위해 아람어를 공용어로 사용했습니다. 이 영향으로 유다인들 사이에서도 점차 아람어가 생활 언어로 자리잡았어요. 히브리어는 성전 예배와 율법의 언어로 남았지만, 많은 백성들은 히브리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율법을 읽을 때는 아람어로 번역하여 해석해 주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후에 ‘탈굼’(Targum, 아람어 성경 번역본)으로 발전했지요. 이 과정은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신앙이 점점 더 ‘말씀 중심’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성전 중심의 예배와 더불어 회당 예배가 점점 확대되었어요. 회당은 성전이 없는 지역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공동체를 세워가는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일상 신앙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훗날 신약 시대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활동하던 배경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페르시아 시대가 남긴 역사적 유산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는 외적으로는 제국의 한 지방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시간이었지만, 내적으로는 유대 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통해 남겨진 유산들은 신약 성경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배경이 됩니다.
- 성전의 회복 –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상징이 되었어요.
- 율법 중심의 신앙 공동체 – 왕조가 아닌 말씀 위에 세워진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 아람어와 회당 예배의 확산 – 언어와 예배의 변화는 유대인들의 신앙을 더 넓고 깊게 만들었어요.
이 모든 과정은 훗날 예수님께서 등장하실 신약 시대의 배경을 마련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가 왜 율법에 민감했고, 회당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심지어 성경에 아람어 표현이 남아 있는지 모두 이 시기의 영향 때문입니다.
마무리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유대 민족은 외적으로는 강대국의 한 지방민에 불과했지만, 내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신앙 공동체로 거듭났습니다. 성전이 재건되고, 율법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으며, 언어와 문화의 변화 속에서도 신앙은 지켜졌습니다.
이 시기는 신구약 중간사의 첫 장을 열어가는 중요한 과정이었고,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신구약 중간사 3편: 알렉산더 대왕과 헬레니즘 (기원전 331~3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