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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중간사 5편, 안티오코스 4세와 마카비 전쟁, 수전절의 기원

신구약 중간사5, 안티오코스 4세와 마카비 전쟁, 수전절의 기원

안티오코스
안티오코스 4세와 마카비 전쟁


1. 셀류시드 지배와 불안한 균형 (기원전 198~175년)

파니온 전투(기원전 198년) 이후 유다는 셀류시드 왕조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초기에 안티오코스 3세는 유대인에게 세금 감면과 성전 특권을 주며 우호적 정책을 폈어요. 그러나 로마와의 패전과 막대한 배상금으로 왕조 재정이 무너지자, 왕권은 점차 성전 재정과 대제사장직을 수입원으로 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대제사장직은 경건과 율법 수호의 상징이 아니라, 돈과 정치력으로 사고파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유대 공동체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켰고, 헬라화된 상류층과 전통 율법주의자 사이의 긴장을 키웠습니다.



2. 안티오코스 4세의 즉위와 강압 정책 (기원전 175년 이후)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왕권을 신격화하며 제국 전체의 헬레니즘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유다 내부의 분열을 활용하여 개입했고, 대제사장직을 경매하듯 팔았습니다.

  • 오니아스 3세(전통파) → 야손(헬라화 지지) → 메넬라오스(더 많은 돈 제시)
    이런 식으로 대제사장이 바뀌었고, 예루살렘 성전은 왕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야손은 예루살렘에 체육관(gymnasion)을 세우고 헬라식 시민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는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전통과 헬라 문화 사이의 갈등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3. 성전 모독과 신앙 탄압 (기원전 167년)

기원전 167년, 안티오코스 4세는 정권 불안을 무마하기 위해 강력한 동화 정책을 단행했습니다.

  • 율법 금지령: 할례, 안식일 준수, 율법 낭독이 금지되고 이를 어기면 처형되었습니다.
  • 성전 모독: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제단 위에 부정한 돼지를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 신앙 탄압: 성경 두루마리는 불태워졌고, 전통을 지키던 유대인들은 학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성경적 표현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 불리며, 유대 신앙사에서 가장 큰 치욕으로 기억됩니다.



4. 마카비 봉기의 시작 (모데인 사건, 기원전 167년)

마카비전쟁

탄압이 절정에 달하자, 작은 마을 모데인에서 불씨가 타올랐습니다. 관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했을 때, 제사장 맛디아스가 이를 거부하고 대신 협력하려던 유대인을 살해했습니다. 그는 다섯 아들과 함께 산악 지대로 피신하며 저항 운동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마카비 전쟁’이라 불리는 독립 투쟁이 전개됩니다.

맛디아스는 곧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유다 마카비가 지도자로 떠올랐습니다.



5. 마카비 전쟁의 주요 전투

유다 마카비와 그의 형제들은 정규군이 아닌 소규모 게릴라 부대를 이끌었지만, 신앙심과 전략으로 수차례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에마우스 전투 (기원전 166년)
    셀류시드 군이 대군을 이끌고 내려왔지만, 유다 마카비가 기습과 야간 전술로 승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투 승리가 아니라, 유대 민족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사적 사건이었어요.
  • 벳술 전투 (기원전 165년)
    안티오코스 4세가 동방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유다군은 벳술에서 다시 승리해 예루살렘로 진격할 길을 열었습니다.

이 전투들에서 보여준 마카비 가문의 용맹은 후대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싸운 전사”라는 상징으로 남게 됩니다.



6. 예루살렘 성전 탈환과 수전절의 기원 (기원전 164년)

마침내 기원전 164년, 유다 마카비와 그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탈환했습니다. 성전은 이미 더럽혀진 상태였기에, 제단을 헐고 새 제단을 쌓은 후 다시 봉헌하는 성전 정결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 정결식은 8일 동안 이어졌는데, 전승에 따르면 성전 등불을 밝힐 기름이 하루치밖에 없었지만, 기적적으로 8일 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건을 기념한 절기가 바로 오늘날까지 지켜지는 수전절(하누카)입니다.

신약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수전절에 성전에 계셨다는 기록은, 이 절기가 단순한 역사적 기념일을 넘어 메시아 대망과 신앙의 정체성과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7. 전쟁 이후와 하스몬 왕조의 토대

안티오코스 4세는 동방 전선에서 원정 중 병에 걸려 기원전 164년에 사망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통치자들은 내부 권력 다툼으로 약화되었고, 유다는 점차 자치권을 확대해 갔습니다.

유다 마카비는 성전을 회복했지만,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의 형제들이 지도력을 이어가며 결국 하스몬 왕조를 세우게 됩니다. 이 왕조는 약 100년 동안 유다의 독립을 지켜냈고, 신약 시대까지 유대 사회의 정치·종교 구조를 형성하는 결정적 배경이 되었어요.



정리

  • 기원전 198년: 유다, 셀류시드 왕조 지배 시작
  • 기원전 175년: 안티오코스 4세 즉위, 헬레니즘 강압 정책
  • 기원전 167년: 성전 모독, 율법 금지, 마카비 봉기 발발 (모데인 사건)
  • 기원전 166년: 에마우스 전투 승리
  • 기원전 165년: 벳술 전투 승리, 예루살렘로 진격
  • 기원전 164년: 예루살렘 성전 탈환, 정결식 → 수전절 기원
  • 이후: 안티오코스 4세 사망, 하스몬 왕조 성립의 토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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