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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혜의 열매- 야고보서 강해(10)

참 지혜의 열매-야고보서 강해(10)

지혜의
참 지혜의 열매


지식과 지혜의 차이

지식과 지혜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죄수가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간수가 보니 착해 보이고, 범죄할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글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간수는 안타까운 마음에 시간을 내어 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배우는 죄수도 기뻤고, 가르치는 간수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출소할 때 간수는 말했습니다.
“이제 글도 배웠으니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마라. 밖에서 건강히 잘 살아라.”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들어온 죄수를 보니, 그가 또 잡혀온 것입니다. 죄목은 공문서 위조였습니다. 간수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여기서 교훈은 분명합니다. 이 사람에게 부족했던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지혜의 정의: 호크마

누군가 지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지식을 바르게 사용하는 인격과 기술의 총체”

성경에서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חָכְמָה)라 합니다.

  •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아는 수준이 아닙니다.
  •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며, 경험으로 녹여내는 자리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말합니다.
지혜는 위로부터 주시는 것이며, 그것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지식에 머무는 신앙의 한계

우리는 종종 말씀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안다(야다)”라는 말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 안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알았을 때, 그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깊은 관계와 체험을 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삶 전 영역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내는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지혜, 호크마입니다.



두 가지 지혜 ― 땅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

야고보 사도는 두 가지 지혜를 구분합니다.

  • 땅의 지혜
  • 하늘의 지혜

누구나 하늘의 지혜를 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내면에는 땅의 지혜가 가득 차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지혜로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혜의 증거 ― 선행과 온유

야고보서 3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즉, 진정한 지혜는 두 가지 증거로 드러납니다.

  1. 선을 행함
  2. 온유함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존재입니다(약 1:18). 진리로 잉태된 생명이라면 당연히 말씀에 따른 열매가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성경적 온유의 의미

온유란 단순히 성품의 부드러움이나 자기 수양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온유는 외부의 힘에 의해 통제되고 절제된 상태를 뜻합니다.

예시를 들어봅시다.

  • 열이 펄펄 끓던 환자가 해열제를 맞고 안정된 상태가 되었을 때, 의사가 “온유해졌다”라고 말합니다.
  • 야생마가 조련을 받아 주인의 말에 따라 달리고 멈추고 먹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을 때, 그것을 “온유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성경적 온유는 성령께 다스림을 받는 삶을 말합니다.



성령의 지배와 하늘의 지혜

에베소서 5장 18절은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과 성령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둘 다 지배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 술은 알코올이 중추신경을 지배해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 성령의 충만은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지혜는 성령의 지배 아래 있을 때만 주어집니다.



땅의 지혜의 네 가지 특징 (약 3:14)

야고보서 3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여기에는 네 가지 항목이 나옵니다.

  1. 시기
  2. 다툼
  3. 자랑
  4. 거짓

이 네 가지가 땅의 지혜의 특징입니다.


(1) 시기

시기는 열등감과 컴플렉스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 요셉의 형들이 그랬습니다.
  • 사울이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가장 큰 이유도 시기였습니다.

시기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분쟁과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기를 “무능력 질투증”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2) 다툼

고린도 교회는 당파 싸움으로 유명했습니다.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서로를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결국 한 공동체 안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정성이 나뉘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3) 자랑

자랑은 자기중심적인 영적 병폐입니다.

  • 바울은 “나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두고 서로 계급을 만들며 자랑했습니다.
  •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분쟁과 시기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4) 거짓

거짓은 과장과 왜곡입니다.

  •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덧붙이고 왜곡하면서 타락했습니다.
  • 자랑과 시기, 다툼은 결국 거짓으로 이어집니다.



땅의 지혜의 구조

어리석은 자의 열매
어리석은 자의 열매

찰스 인돌 목사님의 그림처럼, 땅의 지혜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흘러갑니다.

  • 중심: 독한 시기, 이기적 야망
  • 둘레: 교만, 거짓말, 땅 위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
  • 가장 바깥: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모든 악한 일

즉, 땅의 지혜는 자아 중심의 의식에서 시작해 교만과 거짓으로 확장되며, 결국 혼란과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헛된 인생과 영원한 가치

야고보는 가장 바깥의 결과를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원문에는 “무익한 것”으로도 번역됩니다. 즉, 헛장사입니다.

인생은 장사와 같습니다. 장사의 본질은 남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의 지혜로 사는 인생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원히 남을까요? 성경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1. 하나님의 일
  2. 그리스도
  3. 그분의 말씀

이 세 가지와 연결되지 않은 모든 것은 결국 헛되고 사라집니다.



주인을 아는 것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다섯 달란트냐, 두 달란트냐,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을 아는가였습니다. 주인을 알지 못했던 종은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왔고, 결국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의 지혜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 그리스도, 그리고 말씀을 붙잡는 자만이 영원한 열매를 맺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의 덕목 (약 3:17)

성결 (정결함)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성경에서 성결은 단순히 외적인 깨끗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당시 포도주를 만들 때 이물질이 섞이지 않는 상태를 성결이라 했습니다. 이물질이 들어가면 포도주의 순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성결은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신부의 정결은 외적인 단장보다도 신랑만 바라보는 마음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결입니다.


화평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롬 12: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DNA는 화목케 하는 자로 거듭났습니다.

  • 화평은 무인도에서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람이 북적이는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덕목입니다.
  • 직장, 교회, 가정 속에서 매일 부딪히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가운데 나타나야 할 삶의 열매입니다.


관용

관용은 실수와 죄, 그리고 죄 지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 죄 값은 반드시 묻지만, 그 사람은 받아주는 태도.
  •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죄 값을 지불하셨고, 동시에 죄인 된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

관용은 “좋은 게 좋은 거지”가 아니라, 공의와 사랑이 함께 서는 자리입니다.


양순

양순은 관용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며, 상대방의 생각을 들어주고 긍정해 주는 태도입니다.

  • “아, 그랬구나.”
  • “대단하다.”
  • “그럴 수도 있겠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반응하며, 수용하는 자세가 양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늘 들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긍휼

긍휼은 자격 없는 죄인에게 베푸는 은혜입니다.

  • 원어에는 “어머니의 자궁이 불타는 듯한 마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솔로몬의 재판에서 진짜 어머니의 마음이 드러났듯, 긍휼은 본능적인 사랑의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독생자를 주셨기에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선한 열매, 편견 없음, 거짓 없음

하늘의 지혜는 선한 열매로 가득합니다.

  • 편견은 곧 자기 고집입니다. 신앙이 깊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좁은 프레임으로 다른 이를 정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넓고 크십니다.
  • 거짓 없음은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하늘의 지혜의 근원

하늘의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1. 말씀에서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2. 기도와 간구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며, 마치 그것밖에는 하실 일이 없는 것처럼 귀 기울이십니다.

이 지혜는 성경 말씀과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 주어집니다.
오늘도 이 지혜를 붙들어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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