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장, 나실인의 서원-더 거룩하게 구별된 삶

민수기 5장에서는 진 안의 부정한 것들을 정결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은 거룩해야 했고, 부정한 사람들은 진 밖으로 내보내어 공동체 전체가 정결하게 유지되도록 하셨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민수기 6장에서는 또 다른 특별한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나실인(נָזִיר, 나지르)’, 곧 ‘구별된 자’입니다. 이 장에서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 섬기고자 스스로를 구별한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제사장과 레위인 다음 단계, 다시 말해 거룩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 좁은 범위로 구별된 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나실인이란 누구인가?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민 6:2)
나실인은 단순히 직분이나 태생으로 정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 레위 지파가 아니어도,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하면 나실인이 될 수 있었어요. 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에게만 주어졌고, 레위인은 성막 봉사의 직분을 맡았지만, 나실인은 출신이나 직분과 상관없이 자원하여 하나님께 헌신한 자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종교적 열심을 표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제사장과 대제사장에 버금가는 수준의 거룩한 행실과 절제를 실천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제사장보다 더 엄격하게 자신을 구별했습니다.
2. 나실인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구별의 규례
민수기 6장에는 나실인이 지켜야 할 세 가지 대표적인 규례가 나옵니다.
(1) 포도와 관련된 모든 것 멀리하기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찌니…” (민 6:3-4)
단순히 ‘술을 마시지 말라’는 수준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에서 나는 씨, 껍질, 포도즙, 초, 포도주, 건포도까지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음주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죄의 가능성이 있는 ‘모양’조차 멀리하라는 뜻입니다(살전 5:22).
나실인의 구별은 단지 도덕적 절제에 머물지 않고,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죄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현대적으로 적용해보면,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나 습관, 분위기까지 경계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2) 삭도를 대지 않고 머리카락을 기르기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며…” (민 6:5)
나실인은 서원한 기간 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삭도를 몸에 대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상징이었어요. 머리카락은 그들의 헌신 기간 동안 자라났고, 서원이 끝나면 머리털을 모두 밀어 제단의 불 위에 올려 태웠습니다(민 6:18).
즉, 그들의 시간, 삶, 헌신의 흔적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외모의 상징이 아니라, 구별된 삶의 상징이었습니다.
(3)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민 6:6)
나실인은 부모나 형제의 죽음조차 가까이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은 가까운 가족의 장례에는 참여할 수 있었지만, 대제사장과 나실인은 예외 없이 시체와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세상의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조차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뜻하지 않게 시체와 접촉하게 된다면(예: 옆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경우), 정결 의식을 다시 치르고 서원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민 6:9~12). 이는 하나님 앞에 서원의 엄숙함과 거룩함을 강조하는 장면입니다.
3. 나실인의 서원 기간이 끝나면?
나실인은 평생 서원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나실인으로 살았습니다. 기간이 끝나면 회막으로 나아가 번제, 속죄제, 화목제를 드리고, 머리카락을 밀어 제단에 불사르며 서원을 마무리했습니다(민 6:18~20).
이 과정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시간과 헌신을 감사와 기쁨으로 마무리하는 절정의 예식이었습니다.
4. 신약 시대의 나실인 ― ‘제자’의 삶
오늘날 문자 그대로의 나실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어집니다.
모든 믿는 자는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지만(벧전 2:9), 모든 사람이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나실인처럼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하기로 ‘서원’하는 사람만이 좁은 길을 걸어가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 16:24)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마 8:22)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며, 사랑하는 자만이 기꺼이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5. 사랑이 헌신을 이끈다
나실인의 삶은 억지나 의무가 아니라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옥합을 깬 여인이 주님 앞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눈물과 향유를 닦았던 것처럼(눅 7:37~38), 진정한 헌신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신 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죠(요 21:15~17).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양을 먹이고, 교회를 세우며, 자신의 삶을 드리는 참된 제자가 됩니다.
6. 결론 ― 구별된 삶의 초대
민수기 6장은 단순한 율법 조항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해 드리고자 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실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 깊은 자리, 더 주님의 가까이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실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 세상의 죄와 타협하지 않고 거룩을 지키는 삶
- 자신의 시간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
-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좁은 길을 걷는 제자의 길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나실인의 길입니다.
[한장묵상] 민수기 5장, 부정한 것을 진 밖으로 내어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