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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묵상] 민수기 7장,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

[한장묵상] 민수기 7장,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 성령

왕을 맞이하는 성막 봉헌의 날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든 방법대로 성막을 완성했습니다. 장막이 세워진 그날은 단순한 공사가 끝난 날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에서 봉헌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가 공식적으로 문을 여는 ‘개막식’의 순간이었습니다.
성막 안에 놓인 모든 기구에는 향기로운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모실 준비가 모두 끝난 것입니다.



열두 지파의 대표들이 드린 예물

민수기 7장에는 성막 봉헌식에서 각 지파의 족장들이 드린 예물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장들 곧 그들의 종족의 두령들이요 그 지파의 족장으로서 그 계수함을 입은 자의 감독된 자들이 예물을 드렸으니 그들의 여호와께 드린 예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둘이니 족장 둘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하나에 소가 하나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민 7:2~3)

각 족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물품을 수레에 실어 성막 앞에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에 한 사람씩 단의 봉헌 예물을 드리게 하셨고(민 7:11), 첫째 날에는 유다 지파의 나손, 둘째 날에는 잇사갈 지파의 느다넬이 차례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 봉헌은 12일 동안 계속되었고, 모든 지파가 차례로 하나님께 예물을 올려드렸습니다.



왕의 즉위식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이 장면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고대 왕의 즉위식과 매우 흡사합니다. 왕이 보좌에 앉는 순간, 백성의 대표들이 나와 예물을 바치며 “이제 당신이 우리의 왕이십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온 후 약 1년 동안 시내 광야에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해 둘째 달 초하루, 드디어 약속의 땅을 향해 출발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성막의 봉헌식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새 시대를 여는 ‘즉위식’과도 같은 자리였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성전

이 봉헌식은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모시는 모습과 깊이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실 거처가 마련되어야 성령께서 오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시고, 믿는 자들을 그 몸의 지체로 세우셨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는 곧 ‘왕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왕을 모실 때 백성들이 예물을 드리듯, 우리 역시 마음과 삶을 드려 성령을 맞이해야 합니다.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성령의 임재가 시작됩니다.



성령을 ‘도구’로만 여기는 위험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은 성령을 인격적으로 맞이하지 않고, 구원의 증표나 방언의 도구 정도로만 여기곤 합니다. 회개나 복종의 자세 없이 단순히 ‘방언을 하면 성령을 받은 것’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임재가 단순히 구원의 확인 수단으로 전락하고, 삶의 변화 없이 안심만 얻은 채 방황하는 신앙생활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길의 시작점입니다.



바울의 가르침과 성령의 ‘인침’

바울은 성령을 강조할 때 종종 ‘구원의 인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순간과 성령을 받은 순간이 거의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빛을 보고 눈이 멀었고,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의 비늘이 떨어질 때 성령을 경험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바울은 성령을 ‘구원의 확증’으로 설명했습니다. 신앙의 기초가 부족한 이들에게 하나님이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죠. 그러나 예수님의 본래 강조점은 달랐습니다.



가장 좋은 선물, 성령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계란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1~13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성령입니다. 이는 단지 구원의 표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다스리시기 위한 실제적 통치의 시작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주님과 연합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시는 왕이십니다.



왕을 모시듯 성령을 맞이해야 한다

성령을 모신다는 것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왕을 맞이하는 대관식’입니다. 왕이 임하실 때 백성은 예물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구할 때에도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삶을 드릴 각오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았다면, 그 다음 단계는 “이제 왕이 내 안에 오신다”는 자각과 함께 성령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헌신과 복종의 마음 없이 성령을 가볍게 여긴다면, 신앙의 기초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모신 후의 삶

왕이 임하셨다면, 백성은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데도 여전히 죄와 타협하고 무시한 채 살아간다면, 마치 왕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신하와 같습니다. 우리의 행실이 더러우면 그분께서도 우리 안에서 눈을 감고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뜻에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성령께서는 눈을 뜨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삶입니다.



진정한 왕의 즉위식

성령을 모신다는 것은 단순한 신앙 행위가 아니라, 우리 안에 왕이 좌정하시는 사건입니다. 봉헌식에서 지파별로 예물을 드리며 왕을 맞이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역시 마음과 삶을 드려 성령을 맞이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는 ‘표시’가 아니라, 왕의 통치가 시작되는 ‘현장’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구할 때에는 정성된 마음과 헌신으로 준비해야 하며, 그분을 모신 이후에는 충성과 순종의 삶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민수기 6장, 나실인의 서원으로 자신을 구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