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24장로들의 경배-요한계시록 강해(4)

24장로들의 경배-요한계시록 강해(4)

24장로
24장로


하늘에 열린 문과 반드시 일어날 일 (요한계시록 4:1–2)

요한계시록 4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여기서 “마땅히”는 “반드시”로 바꿔 읽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은 “반드시 일어날 일들”이었지요.

이 말씀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반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 그리고 당시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난 속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내가 반드시 일어날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이 먼저 보여주신 것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어지는 2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고난과 죽음,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던 요한과 교회에게 하나님이 가장 먼저 보여주신 것은 어떤 환상이나 장래의 사건이 아니라, 온 하늘을 보좌 삼아 앉아 계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영적 침체에서 나오는 길

여러분,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길은 무엇일까요?
바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그것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 그것은 행사나 강의가 아닙니다.
  • 오직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는 도미티안 황제만 보였을 것입니다.
로마 군인의 칼끝만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은 너무 작아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나를 보라.”



하나님은 더 크신 분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천장이 없다고 가정해 보세요.
끝에서 끝까지 펼쳐진 하늘을 보좌 삼아 앉으신 하나님, 그 광대하시고 위대하신 분을 바라본다면, 그 발 아래 도미티안도 있고 로마제국도 있다는 사실이 보이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선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문제와 사람만 바라보면 하나님이 작아집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건 못 하실 거야”라는 생각까지 들지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발 아래 있다고.

고난과 두려움 속에 빠져 있을 때, 영적 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눈을 들어 나를 보라.”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 그 첫 번째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의 시선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열방은 그에게 통의 물 한 방울 같고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라.” (이사야 40장)

하나님은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지혜나 열방의 힘은 주님 앞에서 물 한 방울, 티끌과 같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단순합니다. 나는 누구를 두려워할 것인가,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세상도, 사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힘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십니다. 소년이라도 곤비하고 장정이라도 쓰러지지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그 힘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치솟는 힘과 같습니다. 달려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게 하십니다. 조건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것, 주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24장로

요한계시록의 첫 번째 큰 환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24장로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 그들은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
    → 이는 어린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된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 그들의 머리에는 관(스테파노스) 이 있습니다.
    → 이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며, 시험을 끝까지 견뎌낸 자들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입니다.

따라서 24장로는 왕족의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24장로는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환난 중에 주어지는 위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속에 있던 성도들에게 이 말씀은 특별했습니다. 잡히면 불에 타 죽고, 원형경기장에서 짐승에게 찢기며, 자녀와 함께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너희 위에 장막을 치리라.”

감옥이든, 광야든, 경기장이든, 그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는 굶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으며, 해의 뜨거운 기운에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어린양의 위로

마지막으로,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모든 눈물을 친히 씻어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과 눈물, 이해할 수 없는 섭섭함조차 주님 앞에서 닦임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보다 더 위험한 것은 섭섭함입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라는 마음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섭섭함마저도 주 앞에 맡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은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잡을 진리는 분명합니다.

  •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경외할 것.
  •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에게 새 힘이 주어진다는 것.
  • 24장로는 곧 믿음을 지킨 성도들의 상징이라는 것.
  • 결국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친히 닦아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눈을 들어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24장로들의 경배



이전 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