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노트

창세기 강해(09)-아벨의 제사 (창세기 4:1-8)-설교정리 본문

설교정리

창세기 강해(09)-아벨의 제사 (창세기 4:1-8)-설교정리

쓰이미 2026. 8. 3. 15:00

창세기 강해(09)-아벨의 제사 (창세기 4:1-8)

이 글은 송태근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

"아벨의 제사"에 대한 설교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설교 영상은 맨 하단에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러나 다시 들여다볼수록 깊이가 더해지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해요. 익숙한 본문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단순한 사건 설명을 넘어 우리의 삶과 신앙의 본질을 향해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인의 탄생과 인간의 오해

창세기 4장 1절을 보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야다(יָדַע)’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은 단순히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이 아는 것’, 곧 관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이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통해 하와는 임신하고 첫 아들 가인을 낳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고백 속에는 중요한 오해가 담겨 있어요. ‘득남’이라는 단어는 ‘카나(קָנָה)’에서 온 말인데, 이 단어는 단순히 얻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창조하다’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자신이 낳은 가인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대는 점점 흔들리게 됩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존재처럼 자라지 않았고, 오히려 부모에게 깊은 실망과 혼란을 안겨주게 됩니다.

 

 

 

아벨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아벨입니다. 그런데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매우 독특합니다. ‘아벨’은 히브리어로 ‘헛됨’, ‘허무함’, ‘티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왜 부모는 두 번째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요?

이 이름에는 가인을 통해 이미 경험한 인간의 한계와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기대했던 첫 아들이 기대와 다르게 성장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가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둘째 아들을 보며 “인생은 결국 허무하다”라는 고백을 이름에 담게 된 것입니다.

 

 

 

직업이 아닌 예배의 문제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며 “피 있는 제사는 받고, 곡물 제사는 거절되었다”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보면 곡물 제사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대표적으로 ‘소제’가 바로 곡물 제사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상태와 태도에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의 의미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 하나 등장합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구절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세월’은 ‘날(욤)’,
‘지난’은 ‘케에츠’로, 종말이나 심판과 연결되는 단어,
그리고 ‘후에’는 ‘결과가 드러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문장은 “한 절기가 지나 열매가 드러나는 때”, 더 나아가 “심판의 때에 결과가 드러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두 사람의 제사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배자’이며, 결국 우리의 삶의 결과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서게 되는 존재입니다.

 

 

 

아벨의 제사와 믿음의 본질

아벨의 제사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새끼’와 ‘기름진 것’, 즉 가장 좋은 것을 드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정성의 문제는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핵심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말하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었고, 그 믿음이 그의 제사 속에 드러난 것입니다.

 

 

 

가인의 문제는 ‘속함’에 있다

요한일서 3장 12절은 가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가인의 문제는 단순히 행동이 아니라 ‘소속’입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해 있었고, 그 결과로 살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즉, 살인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우리 역시 본래는 가인의 자리에 있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아벨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죄의 두 가지 특징

가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죄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첫째, 죄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죄가 4장에서 살인으로 드러납니다.

 

둘째, 죄는 확대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죄는 점점 더 강력하게 퍼져 결국 노아 시대에는 온 세상이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것은 제물이 아닌 사람

본문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보다 먼저 ‘아벨’을 받으셨습니다. 반대로 가인은 그의 제물과 함께 거절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보다 먼저 우리의 존재를 보십니다.

예배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장면에서 “쳐 죽이니라”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문법상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실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죄와 죽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의 결론, 우리는 어떤 예배자인가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예배자인가요?

가인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아벨처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인가요?

 

신앙은 단순한 습관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교회 분위기가 좋고, 밥이 맛있어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의 문제이며, 소속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어느 한쪽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월이 지난 후에”,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예배가 형식이 아닌 믿음 위에 서 있는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예배자의 삶인지 다시 한 번 깊이 돌아보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