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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사람-오직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 (시편 1:1~6)

복있는 사람(시 1:1~6)

아래 내용은 송태근 목사님의 “복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전하신 설교를 글로 보기쉽게 작성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아래 버튼을 클릭하셔서 이동하시거나, 맨 하단에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
복있는 사람

복으로 시작해 망하리라로 끝나는 구조

시편 1편은 첫 글자가 “복(아쉬래)”로 시작하고 마지막은 “망하리로다”로 끝납니다.
처음과 끝이 이렇게 극단적인 단어로 대비되니, 중간에 분명히 이 둘을 갈라내는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을 찾는 것이 시편 1편을 읽는 핵심입니다.



‘복’의 의미: 아쉬래

히브리어에서 복은 보통 바라크(축복하다)라는 단어를 쓰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아쉬래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아쉬래는 단순히 “복을 받았다”는 선언이 아니라, 감탄의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해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한 것처럼, “넌 참 좋겠다!”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복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을 가지는 싸움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확인하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세 가지 금지: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고

복있는 사람은 세 가지를 금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서 세 번 반복되는 “아니하며”는 점진적으로 흐릅니다.

  • 걷는다 (따른다)
  • 선다
  • 앉는다

✔️ 즉, 잘못된 길로의 움직임에서 시작해, 멈춤, 결국 정착으로 나아가는 타락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꾀의 의미: 여호와께 묻지 않는 태도

‘꾀’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 묻지 않는 모든 태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순간, 인간은 쉽게 꾀에 빠지게 되고, 그 길이 곧 악인의 길입니다.

따른다는 말도 히브리어 원어로는 “걷다(할라크)”입니다. 결국 시편 1편은 인생 길에 대한 이야기이며, 어떤 길을 걷느냐가 곧 인생의 결과를 결정합니다.



롯의 길: 걸음, 서다, 앉다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람과 결별한 롯의 이야기는 시편 1편의 구조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 롯은 처음에 소돔 근처까지 걸어갔습니다. (near Sodom)
  • 시간이 흘러, 결국 소돔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 더 지나서는 소돔 성문에 앉아 지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걷고, 서고, 앉는’ 과정 그대로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아 보인다”는 욕망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소돔의 지도자 위치까지 나아가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 끝은 허무했습니다.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인생 길의 결론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악인의 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열심히 살고, 쌓고, 자리를 얻는다 해도 하나님과 관계 없는 길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속한 사람이며,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묻지 않고 자기 욕망에 이끌려 걷다 보면 결국 망하게 됩니다.



세 가지 부정어와 한 가지 적극적인 길

복있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삶은 자연히 세상의 길과는 거리가 멀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세 가지 부정적인 표현을 보여줍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2절에서 단 하나의 적극적인 삶을 소개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즐거움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절정의 표현입니다.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그 대상을 사랑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 별 의미 없는 이야기도 끝없이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 끝에는 반드시 노래와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성도의 최고의 모습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모습이며, 그 즐거움의 결과가 찬양인 것입니다.



‘주야’의 의미: 인생 전체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단순히 낮과 밤, 24시간 내내 말씀만 읽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적 표현으로 ‘주야’는 인생의 모든 시간, 곧 희노애락의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20대에 읽는 성경과 60대에 읽는 성경의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씀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주야 묵상은 곧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말씀을 붙드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묵상의 의미: 하가

히브리어 ‘묵상하다(하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읊조리다, 반복하다.
  2. 짐승이 배고플 때 울부짖는 소리.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목마른 영혼이 말씀을 갈망하는 상태입니다. 마치 배고픈 짐승이 울부짖듯, 하나님 말씀에 목이 마른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역할: 등불과 빛

시편 기자는 말씀을 “내 발의 등, 내 길의 빛”이라 표현합니다.

  • 은 인생의 목적지를 환히 비추고,
  • 등불은 발 앞의 현실적 장애물들을 비춰 길을 걷게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을 통치하고, 새롭게 하며, 매 순간 지배하는 능력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3절은 복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자연적인 강물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수로를 의미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마르지 않는 수로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심은 나무”라는 표현은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인 존재를 강조합니다. 나무는 스스로 옮겨 심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본래 사막 같은 세상에서 말라가던 나무였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옮겨 심김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직 말씀을 즐거워하라

결국 복 있는 자와 망하는 자를 갈라내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것,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목이 마른 심령, 모든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묻고 기대는 태도가 복된 길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형통의 비밀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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